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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은 비 오는 아침 학교 가는 길 우산을 씌워달라는 아저씨의 말에 선뜻 우산을 씌워주지만 그 아저씨는 해서는 안될 몹쓸 짓을 아이에게 하고 만다. 소원의 가족들은 그때부터 악몽 같은 시간들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너무도 힘든 절망 끝엔 행복도 기다리고 있었다.

우산 쓰고 학교가는 소원이 사진

조두순 한 소녀를 아프게 하다

영화 소원을 보고 너무도 분노에 차 조두순 사건을 찾아본 적이 있다. 소원은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이다. 당시 8세인 초등학교 1학년 소녀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가 나에게 몹쓸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두순은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짓을 결국 아이에게 하고 만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아이에게 2차 피해까지 가했다. 그 사건으로 아이는 인공항문을 만들어야 하는 영구장애를 입었다. 그런데도 조두순은 술을 마시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심신 미약을 핑계로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그런 끔찍한 짓을 하고 겨우 12년형이라니 대한민국의 법은 정말 누구의 편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같은 딸을 가진 입장에서 나는 영화를 보며 정말 순간순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길 몇 번인지 모를 정도였다. 나쁜 짓을 하면 결국 벌을 받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조두순 사건을 보면 정말 벌을 받는 게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사건 그 이후를 보여주는 영화

영화 소원은 끔찍했던 그날 이후를 보여주며 피해자 가족들에 대해 매스컴에서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이야기,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가족의 사랑으로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아픔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어린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소원의 부모님의 마음은 쉽게 뭐라 말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왜 아픔은 남겨진 피해자들의 몫이어야만 하는 것인지 참으로 분노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이기에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벽을 치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딸을 위해 천천히 손을 내밀며 소원을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도와준다. 병원비가 없어 고민하는 소원의 아버지에게 직장 동료와 이웃 주민들은 병원비를 마련해주고 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힘든 소원을 위해 친구들은 가게 앞에 격려 편지를 부쳐 소원에게 힘을 준다. 소원이 걱정된 아버지는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소원이 좋아하는 코코몽 탈을 쓰고 춤을 춘다. 그 장면은 정말 눈물이 안 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악연

국민들의 출소 반대 청원이 20만 명을 넘었지만 결국 조두순은 전자발찌를 차고 12년 뒤 출소했다. 조두순의 출소날 뉴스에서 나온 장면을 보고 어느 나라에서 죄를 지은 사람에게 저렇게 까지 대우를 해주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법무부도 나름의 핑계는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전자발찌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관용차로 모셔다 주는 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조두순은 출소 후 부인이 살고 있는 안산으로 다시 간다고 했다. 안산은 피해자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죄를 뉘우친다면서 피해자 옆으로 다시 간다는 건 무슨 심보인 건지 모르겠다. 피해자 아버지는 조두순을 떠나게만 할 수 있다면 신용대출을 내서라도 조두순에게 이사비를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결국 피해자의 가족은 안산을 떠났다. 범죄자는 그대로 남고 피해자는 견디지 못해 떠나야 하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는지 참으로 분노가 일어난다. 조두순은 대한민국 나이로 만 65세가 넘어 기초연금, 생계급여, 주거급여를 합쳐 매달 120만 원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아무리 대한민국 국민이라 하지만 내가 낸 세금을 저런 범죄자에게 줘야 한다니 정말 세금 낸 게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은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심신 미약이라는 말이 나온다. 심신 미약이면 저지른 범죄가 없어지고 옅어지는 건가? 그런 걸 지켜봐야 하는 피해자들의 가슴은 피멍이 든다. 100년의 형을 내린 들 피해자들의 그간의 슬픔, 아픔, 분노가 풀릴까? 차라리 그럴 거면 테이큰, 세븐 데이즈 영화처럼 내가 직접 자식의 복수를 하며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부모로서 꽃같이 예쁜 소녀들에게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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